어쩌면
그녀, 헵번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고귀한 이름으로 살았다.
헵번스타일을 유행시켰다.
아름다운 영화
로마의 휴일, 사브리나, 티파니에서 아침을, 파계, 전쟁과 평화...
오드리 헵번
그녀는 1929 5. 4 벨기에서 출생했다.
언제 어디서나 음악소리에 춤을 추기를 좋아해서 최고의 발레리나를 꿈꾸기도 했다.
6세쯤 부모 이혼으로 아버지가 그리워 폭식증에 걸리기도 했다.
'아빠가 보고 싶어서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요'
2차 세계대전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오빠 이안이 독일군에 잡혀가자 오빠를 찾기 위해 레지스탕스가 되었다.
춤추는 레지스탕스였다. 자금을 마련하려고.
전쟁이 끝나고 16세가 된 헵번은 뮤지컬, 모델, 연극에 관심을 갖다가
첫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진짜 앤공주가 되어 열연했고
전 세계 여성의 우상, 남자들의 연인으로 부상하고 아카데미 여우주연상까지 타게 된다.
첫 결혼은 오드리가 너무 유명해서 헤어졌고,
두 번째 결혼은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싶은 헵번과 화려한 스타를 원했던 남편과의 갈등이 많았고,
세 번째 로버트 월더스와는 친구처럼 연인처럼 살았다.
오드리는 자신의 인기와 명성이
누군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기아와 난민으로 죽어가는 이들의 도움이 되어주고자 한다.
자신도 도움을 받았던 유니세프의 친선대사가 되어 아이들의 천사가 되어 활동한다.
“어린이 한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100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1989년 스필버그 감독의 출연 제의를 받아
천사로 카메오 출연을 했다.
스크린의 천사로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마지막 소원이었던
스위스에서 가족과 흰눈을 보며 크리스마스 보내고
행복하게 눈을 감는다.
1993. 1. 20 저녁 7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스타였지만
자신보다는
어려운 사람을 위해
고귀한 헌신과 봉사정신을 실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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